|
강기원 시인 / 입술 없는 자의 팬플룻
수장(水葬)된 자가 일어나 손 흔드는 신성리 갈대밭 된바람에 뺨을 내맡긴 갈대들이 서로가 서로를 쳐 모로 쓰러진다 그 사이로 우우 쓰러지기 전 간질환자의 입에서 울려 나오듯 음울하고 깊은 신음소리 어둡고 추운 강의실에서 치뤘던 문서관리 시험날 갈대처럼 여윈 그녀가 거품 물며 쓰러지는 걸 보았지 그때 들었던 먼 곳의 팬풀룻 소리 지금 또 어디선가 입술 없는 사람이 팬플룻을 부나 보다 바람의, 갈대의 영혼이 우는 악기 반인반수 팬(pan)의 슬픈 전설이 흐른다 구멍마다 심장이 있는 듯 흐느끼는 반음계의 긴 독주(獨奏) 일몰을 몰아오는 갈대밭에서 오래 전에 죽은 한 사람을 생각한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12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혜미 시인 / 목요일의 오달리크 (0) | 2020.07.22 |
|---|---|
| 정용화 시인 / 추파(秋波) (0) | 2020.07.22 |
| 김영남 시인 / 치자꽃 (0) | 2020.07.22 |
| 신현락 시인 / 달의 시간 (0) | 2020.07.22 |
| 박몽구 시인 / 분재 (0) | 2020.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