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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진성 시인 / 새들의 북쪽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17.

박진성 시인 / 새들의 북쪽

 

 

  기르던 새를 책장에 꽂아둔 적이 있었지 우리가 기르던 새, 놀이터에서 콕콕 제 부리를 박으며 낮게 날던 새들 우리 눈에만 보이던 새들 우리가 기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새들을 빼곡하게 나무 책장에 넣어두던 시절이 있었지

 

  책장이 하늘이던 시절, 누우면, 이상하게 예쁜, 이상하게 아픈 새들이, 누우면, 쏟아지던 그날들, 지상의 흙을 모조리 떠내고 드디어, 세계가 모조리 하늘이던 시절, 중력을 거부하던 시절, 알몸으로 공중부양하던 시절, 서로의 문장에 밑줄을 긋던 시절, 무작정 노을로 번지는 얇은 햇빛이 죄책감 없이 아름답던 시절, 문득문득 날다가 날개를 잃어버리던 시절, 어쩐지 새들은 지상의 단 한 점 영토 없이도 영원히 날 것만 같았던 그 시절

 

  어느 계절 우리가 책장을 열어봤을 때 새들은 꽁꽁 얼어있었지 모빌처럼 둥둥 떠 있던 시체들 비행하며 부패하는 새들

 

  제 궤도를 그어놓고 나는 새는 더 이상 새가 아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제 발바닥이 밟는 기압을 의심하는 새는 더 이상 새가 아니다

 

  너는 이제 내가 밀어주는 그네를 타지 않는다 책장에서 뛰쳐나간 새소리, 네가 세운 부족에서 들려오는 타악기 소리, 네가 키운 새들은 복부를 두드리며 너의 놀이터를 새로 만든다 새들이 편대를 지어 북쪽으로 날아간다 놀이터를 떠메고서,

 

웹진 『시인광장』 2011년 9월호 발표

 

 


 

박진성 시인

1978년 충남 연기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목숨』(천년의 시작, 2005)과 『아라리』(랜덤하우스코리아, 2008)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