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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 시인 / 비의 도록(圖錄)
마당에 꽂히는 장대비에선 대숲 냄새가 났다 수직으로 늘어선 수평선 빗줄기에 베일수록 풍경은 시퍼렇게 날이 선다
그렇지만 이라고 반박하려다 그만 둔다 비에 젖으면 비가 된다니 우산을 내리고 묵묵히 비를 맞기로 한다 비는 곧바로 온몸을 휘감는다 축축한 혓바닥이 들러붙는다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린 서서히 식어가는 체온이라고 비가 되면 각자 흘러 어느 지층인가로 사라져갈 뿐이라고 스산해졌지만 우산을 다시 들지는 못한다 두 빗방울
장대비는 더 거세졌다 는개 안개비 가랑비 이슬비 여우비 보슬비 작달비 웃비 비님이라고도 했다 다 놔두고 종일 장대비가 쏟아진다 이렇게 세상이 잠기는데 종말에 대한 소식은 없다 비린내가 끼치고 거대한 바람고래가 산자락을 쓸고 지나간다 비 오는 날이 무서운 건 고요해서다 정말이지 음산하다
비는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지중을 파고드는 빗방울 서로 같은 뿌리를 가졌으므로 인연은 있을 것이다 빗줄기 피어오른다 구름꽃이 하늘 가득 피었다
그렇지만 이라고 말하려다 그냥 젖기로 한다 두 빗방울 인연은 있었을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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