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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영주 시인 / 문자 이별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0.

정영주 시인 / 문자 이별

 

 

  축축하게 모래를 파먹던 비가

  배부른지 슬슬 사라진다

  모래 속에 찍힌 아이들 발자국을

  파도가 달려와 물어뜯고 돌아간다

  거품그물만 잔득 남기고

  방금 문자로 받은 이별은

  너를 물어뜯고 간 거품이다

  뜨겁게 기다리다 만난 로망스도 이토록 쉬이 아작 난다

  튼튼한 그물이라고 말하던 네 노래가

  찢어진 그물이 되는 일

  왜일까, 하다가 찢어져서라도 좋아지는 것이 있다, 고

  나는 문득 위로하고 싶어진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혼자 여행하고, 혼자 식탁에 앉고

  혼자 영화를 보는, 다소 쓸쓸한 즐거움도

  괜찮은 거라고 너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어린 연인들이 쏘는 폭죽도

  하늘 모래사장을 잠깐 밟았다 꺼지는 거품이라고

  찰나에 반짝이는 혀나, 화려한 이벤트나,

  설레는 만남이 튼튼한 제국이 되기 전에

  부서지는 액소더스라는 걸

  탈출이어도 닿을 수 없는 나라라는 걸

 

  다 열어주는 너그러운 문이 있을까

  바다의 내음이 습기로 더 짠 것처럼

  짜고 절어서 붙박이 되는 집이 어디 있을까

  바다 같이 온전히 받아 정결케 해주는 제사장이 어디 있을까

  창자에서부터 올라오는 염분덩어리, 쓴 눈물 한 방울

  네 대신 모래사장에 떨군다

  기도보다 독한 눈물이 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기다리는 것도 죄라고

 

웹진 『시인광장』 2011년 11월호 발표

 

 


 

정영주 시인

1952년 서울에서 출생.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졸업.  199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어달리의 새벽》으로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아버지의 도시』(실천문학사, 2003)와 『‘말향고래』(실천문학사, 2007)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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