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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왕노 시인 / 내게도 용 문신을 새기는 밤이 오리라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4.

김왕노 시인 / 내게도 용 문신을 새기는 밤이 오리라

 

 

오래된 TV 드라마에서

한 밤중에 마당에서 줄넘기를 하자 뭐 하느냐고 물으니

고독에 몸부림친다 해서 웃은 적이 있다.

그 때 웃을 일이 아니었고 지금 나도 고독해졌다.

친구와 휩쓸려 1 차 2 차 술자리를 하다가 3 차 노래방에서

그 겨울의 아침을 부르고 장밋빛 스카프를 부르던 날이 꿈이었나 싶다.

스마트 폰의 많은 연락처 중에 선뜻 눌러야 할 이름이 없다.

이렇게 고독한 날은

화투 패를 뜨거나 전신에 문신을 새기고 싶다.

 

몸을 화판으로 더 이상 고독하지 말라고

나와 함께 살아갈 문신을 새기는 것

깍두기처럼 가끔 어깨에 힘을 넣고 꿈틀거리는 문신을 과시하는 것

닭 피로 문신을 새기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순하게 느끼도록 사군자를 새기던지 풀꽃을 새겨도 좋지만

용 문신을 새기고 싶다.

천지를 우레로 뒤흔드는 용, 여의주를 물고 청동의 몸을 꿈틀대며

어둠에 불의 칼을 휘두르듯 일획을 그으며

끝없이 승천하는 용꿈을 꾸고 싶어

 

머지않아 용이 내 몸에서 벼락 치듯 날 것이다.

내 몸은 용의 터전, 나를 박차고 용이 치솟는 날을 기다리다보면

내 고독도 용꿈에 밀려 사라질 것이므로

앞으로 용 문신을 새길 몸에 피가 나도록 박박 문지른다.

용이 나를 낚아채 하늘로 오르다가 떨어뜨리는

악몽을 꾸더라도 고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이 모든 것을 견디며 기다리리라.

 

다시 한 번 단언하지만 내게도 용 문신을 새기는 밤이 오리라.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김왕노 시인

경북 포항에서 출생. 〈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문광부 지정도서)』,『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박인환문학상 수상집』『사진속의 바다-해양문학상 수상집』, 『그리운 파란만장(2015세종도서 선정)』,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2016 세종도서 선정)』『게릴라 (2016년 디카시집)』, 『이별 그 후의 날들 (2017년 디카시집)』, 『리아스식 사랑 (2019년)』,『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2019 문학 나눔 선정)』 등이 있음.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디카시 작품상, 수원문학대상, 한성기 문학상, 풀꽃 문학상, 2018년 제 11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시작문학상 등 수상, 2018년 올해의 좋은 시상, 축구단 말발 단장, 한국 디카시 상임이사,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현재 문학잡지《시와 경계》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