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은숙 시인 / 죽을 먹으며
죽을 먹는다 때 아닌 진눈깨비 속수무책 맞고 있는 홍매 가지처럼 온몸이 아픈 날에는 흰 머리칼 같은 김, 한 올 한 올 불어대며 손끝에 얹힌 숟가락 무게를 골똘히 가늠하며 꽃의 혀는 언제 풀릴까 곁눈질 하며 죽을 먹는다 슴슴하고 심심한 흰 죽이 울컥울컥 목을 타고 넘어가 객귀를 물린다는 바가지처럼 뱃속 가득 둥글게 차오르던 그때 그 할머니는 소복을 입었던가 머리를 풀어헤쳤던가 부엌칼 같은 낮달이 공중에 떴던가 아랫목에 누운 오빠의 숨소리를 숨 죽여 엿듣다가 죽을 먹는다 쌀알을 한 톨 한 톨 세는 저작(詛嚼) 어느 새 눈은 멎고 죽, 죽 빗금 그으며 내리는 비 빗물에 말끔히 죽 그릇을 헹구고 입을 헹구고 탱탱 부풀어 오른 홍매의 잇속 종일 들여다보고 싶고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곽재구 시인 / 강 외 4편 (0) | 2020.07.25 |
|---|---|
| 황금찬 시인 / 나의 소망 외 4편 (0) | 2020.07.25 |
| 곽승란 시인 / 봄바람 내 가슴에 외 6편 (0) | 2020.07.25 |
| 장인수 시인 / 조까씁니다 (0) | 2020.07.24 |
| 김미정 시인 / 꿈의 바깥 (0) | 2020.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