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시인 / 내 가슴에 장미를
더불어 누구와 얘기할 것인가 거리에서 나는 사슴모양 어색하다
나더러 어떻게 노래를 하라느냐 시인은 카나리아가 아니다
제멋대로 내버려두어다오 노래를 잊어버렸다고 할 것이냐
밤이면 우는 나는 두견! 내 가슴속에도 들장미를 피워다오
노천명 시인 / 새해 맞이
구름장을 찢고 화살처럼 퍼지는 새 날빛의 눈부심이여
'설'상을 차리는 다경(多慶)한 집 뜰 안에도--- 나무판자에 불을 지르고 둘러앉은 걸인들의 남루 위에도 자비로운 빛이여
새해 늬는 숱한 기막힌 역사를 삼켰고 위대한 역사를 복중(腹中)에 뱄다
이제 우리 늬게 푸른 희망을 건다 아름다운 꿈을 건다
노천명 시인 / 성탄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는 새벽 어두운 밤을 헤치는 성탄의 노랫소리 집집이 불빛 찬란히 흐르고 사람들 메마름 가슴에 즐거움 깃들였나니 형제여 메리 크리스마스!
인류 구속(救贖)하러 오시는 왕의 왕 베들레헴 가난한 집 마구간으로 겸손히 오신 날 당신의 고초스러운 생--- 가시관에 쓴 잔이 약속된 날이어니
땅 위의 영광을 당신에게 돌리나이다 가슴속 헤치며 드는 저 성당 종소리 탕자도 도둑도 당신의 죄 많은 아들들이 성당이 첨탑을 우러러보며 십자를 긋습니다
오는 이 나라 겨레들은 또 하나의 이스라엘 백성
저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소서 주여 외로운 이들에게 강복(降福)하소서 당신의 축복은 우리에게 있어야겠나이다
노천명 시인 / 언덕
창으로 하늘이 들어온다 눈만 뜨면 내다보는 언덕 소나무가 서너 개 아무것도 없다. 오늘도 소나무가 서너 개 아무것도 안 뵌다.
방 안 풍경이 보기 싫어 온 종일 언덕을 바라본다. 사람이 지나가면 눈이 다 밝아진다.
전봇대모양 우뚝 선 사람이 둘 혹시 나 아는 이 아닐까
가슴이 답답하면 언덕을 본다. 눈물이 나면 언덕을 본다. 이방인 같아 쓸쓸하면 언덕을 본다. 언니랑 조카가 보고프면 언덕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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