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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노천명 시인 /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9.

노천명 시인 /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으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노천명 시인 / 전승의 날

 

 

거리거리에 일장깃발이 물결을 친다

아세아민족의 큰 잔칫날

오늘 싱가폴을 떨어뜨린 이 감격

고운 처녀들아 꽃을 꺾어라

남양 형제들에게 꽃다발을 보내자

비둘기를 날리자

 

눈이 커서 슬픈 형제들이여

代代로 너희가 섬겨온 상전 영미는

오늘로 깨끗이 세기적 추방을 당하였나니

 

고무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나오너라

종려나무 잎사귀를 쓰고 나오너라

오래간만에 가슴을 열고 웃어 보지 않으려나

 

그 처참하던 대포소리 이제 끝나고 공중엔

일장표의 비행기 은빛으로 빛나는 아침

남양의 섬들아 만세 불러 평화를 받아라

 

 


 

 

노천명 시인 / 봄비

 

 

강에 얼음장 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가슴속 어디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봄이 온다기로

밤새것 울어 새일 것은 없으련만

밤을 새워 땅이 꺼지게 통곡함은

이 겨울이 가는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을 즐기차게 서러워함은

겨울이 또 하나 가려 함이었습니다

 

화려한 꽃철을 가져온다지만

 

이 겨울을 보냄은

견딜 수 없는 비애였기에

한밤을 울어울어 보내는 것입니다

 

 


 

노천명[盧天命, 1912.9.2∼1957.12.10]  시인

1912년 황해도의 장연(長淵)에서 출생. 진명학교(進明學校)를 거쳐, 이화여전(梨花女專) 영문학과 졸업. 이화여전 재학 때인 1932년 《신동아》 6월호에 〈밤의 찬미(讚美)>  를 발표하며 데뷔. 저서로는 시집으로 1938년 초기의 작품 49편을 수록한 제1시집 『산호림(珊瑚林)』, 향토적 소재를 무한한 애착을 가지고 노래한 〈남사당(男寺黨)>, 〈춘향>,  〈푸른 5월>  등이 수록된 1945년 2월 출간된  제2시집 『창변(窓邊)』 6·25전쟁 당시 미처 피난하지 못해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죄로 부역 혐의를 받고 일시 투옥되어 옥중시와 출감 후의 착잡한 심정을 노래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 1953년  출간된  제3시집 『별을 쳐다보며』와 수필집으로 『산딸기』, 『나의 생활백서(生活白書)』 등이 있음. 1957년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