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 시인 / 그 마음에는
그 사사스러운 일로 정히 닦아온 마음에 얼룩진 그림자를 보내지 말라.
그 마음에는 한 그루 나무를 심어 꽃을 피게 할 일이요
한 마리 학으로 하여 노래를 부르게 할 일이다.
대숲에 자취 없이 바람이 쉬어 가고
구름도 흔적 없이 하늘을 지나가듯
어둡고 흐린 날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받들어
그 마음에는 한 마리 작은 나비도 너그러게 쉬어 가게 하라.
신석정 시인 / 네 눈망울에서는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오월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서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이야기를 머금었다
네 눈망울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종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신석정 시인 /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으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신석정 시인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많은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 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든 산을 찾아 내 마음 머언길을 떠나네
산에는 고요한 품안에 고산 식물들이 자라나거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석정 시인 / 연꽃이었다 외 2편 (0) | 2020.03.20 |
---|---|
박두진 시인 / 새벽바람에 외 3편 (0) | 2020.03.20 |
박두진 시인 / 당신 사랑 앞에 외 3편 (0) | 2020.03.19 |
노천명 시인 /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외 2편 (0) | 2020.03.19 |
박두진 시인 / 가을 당신에게 외 3편 (0) | 2020.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