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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석정 시인 / 그 마음에는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9.

신석정 시인 / 그 마음에는

 

 

그 사사스러운 일로

정히 닦아온 마음에

얼룩진 그림자를 보내지 말라.

 

그 마음에는

한 그루 나무를 심어

꽃을 피게 할 일이요

 

한 마리

학으로 하여

노래를 부르게 할 일이다.

 

대숲에

자취 없이

바람이 쉬어 가고

 

구름도

흔적 없이

하늘을 지나가듯

 

어둡고

흐린 날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받들어

 

그 마음에는

한 마리 작은 나비도

너그러게 쉬어 가게 하라.

 

 


 

 

신석정 시인 / 네 눈망울에서는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오월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서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이야기를 머금었다

 

네 눈망울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종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신석정 시인 /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으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신석정 시인 / 산으로 가는 마음

 

 

내 마음

주름살 많은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 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든 산을 찾아 내 마음 머언길을 떠나네

 

산에는

고요한 품안에 고산 식물들이 자라나거니

 

마음이여

너는 해가 저물어 이윽고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

 

산에서

그렇게 고요한 품안을 떠나와서야 쓰겠니

 

 


 

 

신석정[辛夕汀, 1907.7.7~1974.7.6] 시인

1907년 전라북도 부안(扶安)에서 출생. 본명은 석정(錫正). 보통학교 졸업후에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전(佛典) 연구.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며 詩作활동 시작. 1931년 《시문학》 3호부터 동인으로 작품활동. 그해에 「선물」,「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등을 발표했고, 계속해서 「나의 꿈을 엿보시겠읍니까」, 「봄의 유혹」, 「어느 작은 풍경」 등 목가적인 서정시를 발표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굳힘. 8.15 광복 후에는 시작(詩作)과 후진양성에 전념했고, 저서로는 초기의 주옥 같은 전원시가 주류를 이룬 제 1시집 『촛불』(1939)과, 8.15광복 전의 작품을 묶은 제2시집  『슬픈 목가(牧歌)』(1947)를 비롯,  계속

해서 『빙하(氷河)』, 『산의 서곡(序曲)』, 『대바람 소리』 등의 시집 간행. 그의 시풍은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 데 특색이 있고, 그 맑은 시정(詩情)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