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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금찬 시인 / 달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8.

황금찬 시인 / 달밤

 

 

달을 보고 있었다

달이 익었다

 

그 익은 달을

9월의 사과처럼 따

먹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들어올린 것은 바다였다

사랑의 손톱 자국도 없는

칡넝쿨 같은

바다였다

 

우리가 달을 토해내자

바다도

수없이 많은 달을

토해내고 있었다.

 

 


 

 

황금찬 시인 / 바다 환상곡

 

 

여름 바다에 오면

海員이 되고 싶다.

비단 돛을 올리고

검은 해리 전설의 인어가

사랑을 찾아 헤엄치는

그 찬란한 아침에

 

편지 속에

어느 독자가 보내준

해바라기씨 몇 개

지금 저 수평선

그 너머 꽃밭에서 피고

 

물결에 쓸리어

천 년의 연륜 빛나는

조개껍질로

목걸이를 만들어

집시의 살결

검은 여인

그 긴 목에 걸어주고

돌아서리라.

 

사랑의 비늘이

아직도 잠들지 않은

모래언덕에 앉아

피리를 불면

물새처럼 날아오는

바다 바다 여름 바다

 

불꽃 같은 열기가 식고

바다에 등불이 꺼지면

이베리아 반도

어느 고독한 섬 물새처럼

파도소리가 그리워

빈 고동들이 울고 있어라.

 

바다는

여름 바다는

사랑과

미움

그 사이에

살결 깊은 가슴으로

열리어 있었다.

 

 


 

 

황금찬 시인 / 보석의 노래

 

 

황홀한 모습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네 윤곽 부근에서

해가 솟고

우리는 목마르게 목마르게

너를 지켜보고 있다.

 

아름다움은 영원일레라

누가 네 앞에서

추악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너는 이슬 보자기 속에서

눈을 뜨고 있다.

 

신화 속의 이카로스도

너를 찾아 떠났고

눈속에서 피는 매화도

너를 부러워했느니라.

 

거기가 어디쯤이었을까?

꿈 속에서 너를 잃어버린

그 회색의 바다

 

나는 오늘도 찾고 있다.

영혼의 보석 한 개

하늘 문을 열고

 

 


 

 

황금찬 시인 / 봄밤

 

 

봄밤엔

잠이 오지 않았네

이 밤에 내가 네게

할 이야기는

행복하고도 슬펐던

긴 이야기.

 

목련꽃 가지에

창호지 초롱에

불을 켜 달아놓고

새벽이 올 때까지

편지를 쓴다.

 

내 마음 언덕에

봄 풀이 솟아나고

4월 바람은 꽃구름을

벽에 걸린 거울 앞까지

곱게 밀어 올렸다.

 

봄을 기다리던

겨울나무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밤바다의 물결은

아직도 멎지 않고

나의 길고도 짧은 사연은

끝이 없었다.

 

 


 

 

황금찬 시인 / 사랑과 지혜

 

 

강물이 흐르다가

여울을 만나면

노래를 부른다.

 

나무는

바람 앞에서

고독한 독백으로

구름을 이야기하고.

 

나는 삶의

여울에선

언제나 울고 있다.

 

꽃은 사랑으로

피고

잎은 지혜로

자라는데.

 

이 밤에

외롭게 흘러가는

저 별 하나는

어느 곳에서 쉬게 될까.

 

삶의 사랑과

죽음의 지혜를 모르는 나는

이 바람 앞에서

망각의 피리를 불고 있다.

 

 


 

황금찬 시인(黃錦燦 1918년-2017년)

1918년 강원 속초시 출생. 1947년 ,새사람>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하였고 1951년 시 동인 '청포도'를 결성했다. 1953년 <문예>지에 <경주를 지나며>가 추천되어 정식으로 등단했다. 1965년 첫 시집 <현장>을 낸 이후 2008년 <고향의 소나무>까지 거의 매년 시집을 낼 정도로 왕성한 창작을 해왔다. 1948~78년에 강릉농업고등학교, 서울 동성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했고, 1978~80년 중앙신학대학 기독교문학과 교수, 1980년~94년에는 추계예술대학, 숭의여자전문대학, 한국신학대학에서 강의했다. 1996 대한민국문학부문문화예술상. 1992 문화의 달 보관문화훈장. 1990 서울시 문화상. 1982 한국기독교 문학상. 1973 월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