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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차영미 시인 / 밀양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5.

차영미 시인 / 밀양호

 

 

풍만한 산등성이는 물을 가득 안고 있었다 곡선이었으나 되바라지지 않고, 깊었으나 무겁지 않아서 빛깔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무중력의 지면이 깊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회색에도 50가지 색이 있다는데 초록은 어디까지 뻗어 있을까, 산만해지는 나를 잡으려 초록을 들여다보았으나 반사되지 않았다

 

저장되지 않은 시어들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바라는 허영이었을까, 갈림길에서 만나는 변덕스러운 꼬리표가 근질거렸다 나를 가끔 저어주고, 뭉쳐지지 않도록 팔을 휘두르는 것은 응고되지 않기 위한 변명이었다 나는 나를 자주 들키고 있었다

 

투과되지 않는 깊이, 고여 있는 앙금들, 좋은 것만 만나기에도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 하던 노스님은 떠났다 달아나는 언어들을 굴렸다 나는 어디선가 본 말똥구리를 닮았다 더듬거리다 길을 잃는 잔해들, 둥글게 말아가는 말의 꼬리들, 사진 속 밀양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차영미 시인

2009년 격월간 《서정문학》 시부문 등단. 2015년 계간 《시와 세계》 등단. 현재 도서출판 서정문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