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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희 시인 / 인내는 쓰다, 그러나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5.

김진희 시인 / 인내는 쓰다, 그러나

 

 

  아주 뜨거운 여름이야

  저 비닐하우스 속에는 여리디여린 채소들이 자라고 있어

  그들을 키우는 목적은 단 한 가지

  빨리 팔아먹기 위해 서지

  그 이유 하나로 뜨거운 여름을 견디게 하고 있는 중이지

  그 쓰디쓴 인내의 열매를 사람들은 냉큼냉큼 잘 따먹고 있지

  그럼 인간의 수고를 따먹는 놈들은 어떤 놈들일까?

  각종 채소들이 인간을 잘 모르듯이 (그렇다고 사료됨)

  인간들도 인간의 수고를 따먹는 놈들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다고 봐야지

  그 쓰디쓴 열매를 똑 따먹고 도망간 놈들을 긴급 수배함

 

  속이 너무 드러나 보여 가벼운 것들아

  급조된 인연은 생각보다 빨리 끝장이 나버리지

  처음부터 서로가 이기적으로만 접근을 했던 거였어

  지금 바로 뒤돌아서도 아쉬움은 절대 남질 않지

  여기까지였나 보다

  적나라하게 그 속을 더 내보이렴

  이제 계산이나 분명히 하고 털자

  네 뒤끝은 됐고 이제부터는 내 뒤끝을 기대해 보렴

 

  줄에 매어 있다는 것

  그것도 목에 줄이 매어있다는 것

  반경이 아주 좁다는 것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한다는 것

  친절한 호의를 애타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

  하사받은 뼈다귀와 간식엔

  심하게 꼬리를 흔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

  끝까지 충성은 맹세해야 한다는 것

  썩은 속까지도 다 내주어야 하는 인내의 정점

  그러나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

  월월

  월월월

 

  날쌘돌이 쥐

  경계를 잘하던 쥐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쥐

  그런 쥐가 단단한 쇠줄에 묶여있는 개에게 잡히다니

  드루와

  드루와 얼른

  이 감방 속으로

  진정한 왕을 못 알아먹은 네 죄가 크다

  먹고 먹히고, 먹고 먹히고

  먹다가 걸려들고, 또 걸려들고

  이 짓 또한 또 다른 인내의 정점

 

  백색의 감옥

  저 비닐하우스 속에

  또다시 햇빛이 뜨겁게 뜨겁게 내리쬐는구나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엉뚱한 놈이 똑 따간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김진희 시인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2011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상처에 대응하는 방식』(문학의전당, 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