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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은숙 시인 / 하오 쪽으로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7.

안은숙 시인 / 하오 쪽으로

 

 

가을에 말라죽은 풀들을 보면 다 하오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우후죽순의 고개를 관리하는 하오,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와글와글 떨어지는 열매들을 방치하는 풀숲의 창고.

 

과일을 따서 보관하는 창고는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노란 승합차들이 하나둘 지나간다. 아이들은 아침의 방향에서 칭얼거리고 하오의 방향에서 웃는다. 팔 벌린 아이들이 동요처럼 쏟아져 나오는 하오, 미루다 쳐다보는 서쪽은 불빛들이 걸어 나올 것 같은 하오의 끝. 더 먼 하오 쪽으로 시간은 달려간다.

 

서쪽의 봉합, 모든 동쪽이 몰려가는 서쪽

 

반나절 번식된 것들이 옮겨가는 걸음, 몸뚱이를 그러데이션으로 물들이고 꼬리를 검은 우단에 총총 박기도 하는 무성한 소리가 제자리를 찾는다.

 

저음은 여섯 번째 현이 질겨지는 방향, 모든 열매는 하오 쪽에서 여물어간다. 가장 잘 익은 쪽이 가장 두드려 깨기 좋은 방향, 하오 쪽을 돌멩이로 두드려 깨면 붉은 노을이 확 쏟아진다.

 

동쪽에서 핀 꽃들이 서쪽에서 흩날린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안은숙 시인

서울에서 출생.  건국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석사졸업. 201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