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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수덕 시인 / 겨울 저녁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8.

양수덕 시인 / 겨울 저녁

 

 

  겨울이므로 난해하다

  저녁이므로 수상하다

 

  하얀 뼈들의 조립, 겨울

  수많은 기호의 어스름, 겨울

 

  내 바깥 풍경이 안 풍경을 만나

  갈 데까지 갔다

 

  회색의 사각지대

  차디찬 손

  점으로 박힌 집

 

  눈동자가 눈동자를 밀어내는

  극지체험이라고 말하면

  이 어두움을 풀이 할 수 있을까

 

시집 『새, 블랙박스』(상상인, 2020) 중에서

 

 


 

 

양수덕 시인 / 스쳐가는 이야기

 

 

나를 이끄는 화살표는 위로만 뻗어 있었다

그 먼 히말라야의 설산에 핀 에델바이스의

외롭고 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지나온 발자국들을 주울 때마다

하늘이 점점 가까워지고

이따금 분홍 구름이 머물다 가기도 했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거품처럼 보글거리고

저녁이면 나는 아래로 내려가

하늘에 붙들린 시선 중 하나만을 뽑아 그들과 섞는다

 

지상의 꿈을 엿보는 것조차 피해왔다

내가 꾸는 꿈은 꿈도 아닐 것이기에

 

타워 크레인의 꼭대기, 히말라야 설산은

더없이 편안하고 아늑하다

나는 오래도록 피어날 수 있기에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기에

 

설산도 무너질까

위로 뻗은 화살표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는,

믿기 힘들지만 그랬다

 

이제 하늘에 안긴 나는

더 이상 한들거리지 않는다

하늘이 입김을 불면 거품들은 꺼진다

슬픔이 오래 머물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시집 『새, 블랙박스』(상상인, 2020) 중에서

 

 


 

양수덕 시인

성신여자사범대학 국문과 졸업.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너무 많은 입』(문학세계사, 2015)과 『가벼운 집』(시와미학, 2016), 『가벼운 집』(천년의시작, 2018), 『새, 블랙박스』(상상인, 2020)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