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밝은 시인 / 외계인 손 증후군*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9.

김밝은 시인 / 외계인 손 증후군*

 

 

언젠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는 신의 말씀이 있었다는데

 

내가 잘 알았던 내 손

뽐내는 얼굴들만 모이는 기슭으로 뻗으려던 적 많았다

잡으려고, 잡아보려고

 

이제 그만 쓸데없는 욕심들 내려놓으려 해도

비웃는 손,

모르는 척 시치미다

 

어제는 내 손으로 내 목을 짓눌러 피멍이 들고

오늘은 순해지려는 손을 가슴에 얹다가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어느 날은 제멋대로인 손이 멀쩡한 벽을 치고

피를 철철 흘리며 하늘에 삿대질을 했다

 

나의 비밀을 보듬어줄 어딘가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닫혀버릴지 몰라

나를 시기하는 나에게 더는 휘둘리지 않겠다며

빳빳하게 무장한 고개를 당당하게 쳐들어도

아뿔싸,

 

언제나 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버리는 손

 

날카로운 가시를 무성하게 키워내라는

계시가 붙박여 있다

 

*한 손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 마치 손 자체가 의지를 가진 것처럼, 혹은 외부의 어떤 힘에 이끌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신경 질환.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김밝은 시인

전남 해남에서 출생. 한국방송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2013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술의 미학』(미네르바, 2017)이 있음.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