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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시인 / 죽은 나무들이 말하길
죽은 나무들이 말하길 잎은 다시 돋지 않아도 꽃은 다시 피지 않아도 허공이 졸아들듯 공중(空中)이 메워지는 것은 아니다
죽은 나무들이 이르길 죽은 뒤에도 서 있는 것은 죽어도 길들여지지 않은 고집이 있다는 걸 삭정이를 떨어뜨리며 마지막까지 기다리는 자세는 죽음이 간섭할 수 없음이다
죽은 나무들이 보여주길 죽은 뒤에도 여전히 죽는 연습이 남았다는 걸 껍질을 떨구고 벌레들에게 사방으로 먹히고 그러고도 남는 몸이란 보굿을 떨어뜨리며 나뭇가지들 곡선을 풀 때까지 곤줄박이 동고비 진박새의 횃대로 서보는 것이다
죽은 나무들이 바라길 죽어서도 무덤을 짓지 않는 건 그래도 나머지로 더 쓰일 데가 없나 노출을 즐기지 않을 수 없음이며, 죽어서도 더 깊이 한 번 더 죽을 순간이 남지 않았나 끝까지 이용당하고 버려지길 바라는 바이다
죽은 나무들이 말하길 죽은 나무들은 꽃과 잎들과 열매의 수사(修辭)를 챙기지 않는 문 장의 여행이며 죽은 나무들이 먼 여행에서 돌아온 날 꼭 죽은 나무라고만 부를 수 있나 죽음을 달게 마신 몸으로 키워낸 층층의 나무 버섯을 후계자처럼 내미는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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