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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 시인 / 누드화가
습관처럼 문을 닫아걸고 옷을 벗으면 그는 재빨리 데생에 들어간다 은밀한, 그 앞에선 긴장이 풀어지고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한다
그가 쓰는 물감은 주로 물방울과 수증기 안개 빛 배경을 깔고 턱 선을 그리고 쇠골뼈 다음으로 분홍빛 유두가 그려진다 물방울을 너무 많이 혼합해 귀가 떨어져 나가고 목이 잘려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없어지고 또 내가 된다
낯설다 어디쯤일까 나는,
수증기로 뿌옇게 덧칠해 안개 빛 커튼으로 가슴을 가려주지만 그를 향해 물세례를 퍼붓는다 그림 한 폭이 축축이 젖었다 하루에 한 번, 누드모델이 들락거린다 그가 그림을 망칠 때마다 모델은 축축한 위로의 물세례를 받는다
우리 집 목욕탕에 사는 피카소 닮은 누드화가, 나를 인화하듯 그려내는 그는 보이지 않는다 미완성 초상화를 안개로 지워버리고 또 다시 사라졌다 나로 하여금 훌훌 벗어던지게 할 뿐 아무리 내 속을 다 보여주어도 심장을 그려내지 못하는 그는 삼류다
던져진 옷처럼 나도 벗어던진다 그가 수없이 그려놓은 나의 본색이 보인다
그를 삼류라 하는 나는 하류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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