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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경선 시인 / 누드화가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31.

김경선 시인 / 누드화가

 

 

  습관처럼 문을 닫아걸고 옷을 벗으면

  그는 재빨리 데생에 들어간다

  은밀한, 그 앞에선 긴장이 풀어지고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한다

 

  그가 쓰는 물감은 주로 물방울과 수증기

  안개 빛 배경을 깔고 턱 선을 그리고

  쇠골뼈 다음으로 분홍빛 유두가 그려진다

  물방울을 너무 많이 혼합해 귀가 떨어져 나가고

  목이 잘려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없어지고 또 내가 된다

 

  낯설다 어디쯤일까 나는,

 

  수증기로 뿌옇게 덧칠해

  안개 빛 커튼으로 가슴을 가려주지만

  그를 향해 물세례를 퍼붓는다

  그림 한 폭이 축축이 젖었다

  하루에 한 번, 누드모델이 들락거린다

  그가 그림을 망칠 때마다 모델은

  축축한 위로의 물세례를 받는다

 

  우리 집 목욕탕에 사는 피카소 닮은 누드화가,

  나를 인화하듯 그려내는 그는 보이지 않는다

  미완성 초상화를 안개로 지워버리고

  또 다시 사라졌다

  나로 하여금 훌훌 벗어던지게 할 뿐

  아무리 내 속을 다 보여주어도

  심장을 그려내지 못하는 그는 삼류다

 

  던져진 옷처럼 나도 벗어던진다

  그가 수없이 그려놓은 나의 본색이 보인다

 

  그를 삼류라 하는 나는 하류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2월호 발표

 

 


 

김경선 시인

인천광역시 옹진에서 출생. 2005년 《시인정신》을 통해 등단. 현재 '젊은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