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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 / 5월
1 산빛은 저물녘에 이우르고 산기슭 외딴 초가 연기는 줄줄이 피어오르는데 노승(老僧) 한 분 산사(山寺)를 뒤로하여 바람 끝에 하롱하롱 오동꽃 송이송이
2 빗방울에 씻기고 씻기어 마침내 튕겨져 나온 햇살 무리들아 허리를 구부리고 무슨 금맥(金脈)이라도 찾으려는가 하늘 끝 어디쯤서 뺨 부비고 눈부시게 살이 올라 저기, 저, 젖가슴 철철 넘치는 청보리빛 눈물 찬 꽃봉오리야
구재기 시인 / 가끔은 흔들리며 살고 싶다
지난밤의 긴 어둠 비바람 심히 몰아치면서, 나무는 제 몸을 마구 흔들며 높이 소리하더니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더 푸르다 감당하지 못할 이파리들을 털어 버린 까닭이다 맑은 날 과분한 이파리를 매달고는 참회는 어둠 속에서 가능한 것 분에 넘치는 이파리를 떨어뜨렸다 제 몸의 무게만큼 감당하기 위해서 가끔은 저렇게 남모르게 흔들어 대는 나무 나도 가끔은 흔들리며 살고 싶다 어둠을 틈 타 참회의 눈을 하고 부끄러움처럼 비어있는 천정(天頂)을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무게만을 감당하고 싶다 홀가분하게 아침 햇살에 눈부시고 싶다 대둔산 구름다리를 건너며 흔들리며 웃는 게 눈부실 수 있다 가끔씩 온몸을 흔들리며 무게로 채워진 바위 그 무게를 버려가며 사는 게 삶이다 지난날들의 모자가 아직 씌워져 남아있는 푸념의 확인, 구름다리 밑의 아찔한 거리로 가끔은 징검징검 흔들리며 살고 싶다
구재기 시인 / 가을 하늘
울타리 밑에서 호박은 핑크빛으로 늙어갔다 마른 넝쿨손이 울타리목을 잡은 게 필사적이었다 은행잎이 노라니 익어가는 언덕길 끝은 푸르디 높은 하늘 어디서, 쩡쩌엉쩡, 대낮의 장끼가 울어댔다 하루가 소리 없이 빨리도 지나가지만 다가오는 먼 그림 속 빛깔들이 바람 속에서 다투어가고 있었다
구재기 시인 / 그림자
세상의 맑은 곳일수록 햇살 밝은 날일수록
내 삶의 무게만큼 내려놓고 싶다
구재기 시인 / 금강(金剛)으로 향하며
금강으로 향하여 바다를 달린다 하얗게 일어서는 뱃길
발을 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자는 오라 흙탕물을 밟지 않은 전투화를 벗어 던지고 달릴 수 있는 자는 모두 이곳으로 오라, 오라
금강으로 가는 길 하늘의 모든 구름이 쏟아 부은 온갖 설움과 슬픔과 원망을 딛고 너와 나는 비로소 한 마음 한 몸이 될지니
두터운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달릴 수 있는 자는 모두 이 뱃길로 오라 이 푸른 알몸의 바다로 오라
청정의 창해 햇살이란 햇살들이 이곳에서는 애시당초 심해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것
푸른 물낯을 터전으로 하고 금강의 그림자를 얼싸안을 수 있는 너른 가슴인 자는 이 뱃길에 온몸으로 뛰어 들어라
금강으로 향하여 뱃길을 간다 청정의 순한 길 모진 두 손을 씻으며 닦으며 금강과 한 몸 되려 하얗게 일어서는 창해의 햇살로 뱃길을 빚으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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