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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운진 시인 / 바꿀 수 없는 버릇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

이운진 시인 / 바꿀 수 없는 버릇

 

 

  어금니를 무는 버릇이 있군요

  의사가 숨은 버릇 하나를 찾아냈을 때

  입을 다문 건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헐어가는 입으로 물고 있는 것들,

  옛 애인의 소문이나

  책 속의 쓰레기 같은 정신이나

  매운 사탕과자나

  썩고 있는 우울,

  나의 만찬들을 씻어내기 싫어서였다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금이 가겠는데요

  의사가 자꾸 버릇이라고 말할 때

  손으로 입을 막아버린 건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깨물어야 안심이 되는 것,

  그것이 나라고 말할 수 없어서였다

  위험한 버릇이라지만

  내게 정말 위험한 건

  꽃이름 따위를 말하느라 입을 벌리는 순간

  삶의 허공을 깨무는 일이다

  노련하게 어금니에 힘을 준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3월호 발표

 

 


 

이운진 시인

경남 거창에서 출생. 1995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문학의전당, 2006)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