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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 / 보석에 대하여
유리칼로 유리를 잘랐다 단단한 유리가 어떤 몸부림처럼 소리하며 둘로 잘려나갔다
유리를 자른 단단한 것이 금강석이라 했다
금강석은 보석이라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의 사랑이 보석이라 했다 그 보석이 결국 우리를 둘로 갈라놓았다
잘려진 유리가 유리창에 끼워졌을 때 안과 밖이 생겼다 안과 밖에서 우리의 사랑이 마구 울었다
바람이 겨울로 가고 있었다
구재기 시인 / 비를 맞으며
마른 땅에 비가 내렸다 흘러내릴까 했는데 나무 밑에서 빗물은 이내 땅속에 스며들었다. 지금쯤 빗물은 아직 한 번 본 적도 없는 지상의 사랑 이야기를 나무 뿌리들에 속삭여주고 있을 것이다.
아, 아, 나도 빗물이고 싶다. 여자의 마른 몸에 빗물로 스며 가슴의 뿌리를 적시면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내 사랑을 속삭여주고 싶다. 그렇게 또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구재기 시인 / 소주에 대하여
우리는 소주를 좋아했다. 입술을 제 빛으로 촉촉이 적시고 맑음을 가진 소주와 같은 사랑을 했다.
남들처럼 입술에 거품을 물고 배부르게 사랑하는 걸 싫어했다.
우리의 사랑은 가난해서 좋았다. 가난을 만날 때마다 슬픔이 자주 일었다.
가난은 서로 나눌 슬픔이 있다는 것
우리는 슬픔을 나누기 위해 곧잘 사랑을 마셨다.
사람들처럼 거품을 물지 않고 우리는 맑은 사랑으로 입술을 적시며 슬픔으로 가까이 슬픔을 길러 더욱 더 가난하게 소주를 마셨다.
구재기 시인 / 오늘이고 싶다
매양 오늘 같이 사랑에 취하고 싶다 바람이 불고 간간히 소나기 내리듯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싶다 산등성이로 이는 구름 속에 묻혀 지상의 어느 누구도 바라볼 수 없는 하늘의 자리를 마련하고 햇살처럼 찬연히, 뜨거웁게 온 몸을 달구고 싶다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해도 오늘 같이 오늘의 사랑은 오늘이고 싶다
구재기 시인 / 잡초 - 둑길行
밤새도록 폭풍우가 몰아쳤는데도 자고 일어나 나아가 보니 둑길의 잡초들이 살아 있었다 아, 아침 햇살 속에서 진땀을 흘리며 하이야니 저런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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