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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재기 시인 / 보석에 대하여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3.

구재기 시인 / 보석에 대하여

 

 

유리칼로 유리를 잘랐다

단단한 유리가

어떤 몸부림처럼 소리하며 둘로 잘려나갔다

 

유리를 자른 단단한 것이

금강석이라 했다

 

금강석은 보석이라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의 사랑이 보석이라 했다

그 보석이 결국 우리를 둘로 갈라놓았다

 

잘려진 유리가 유리창에 끼워졌을 때

안과 밖이 생겼다 안과 밖에서

우리의 사랑이 마구 울었다

 

바람이 겨울로 가고 있었다

 

 


 

 

구재기 시인 / 비를 맞으며

 

 

마른 땅에 비가 내렸다

흘러내릴까 했는데 나무 밑에서

빗물은 이내 땅속에 스며들었다.

지금쯤 빗물은 아직 한 번 본 적도 없는

지상의 사랑 이야기를

나무 뿌리들에 속삭여주고 있을 것이다.

 

아, 아, 나도 빗물이고 싶다.

여자의 마른 몸에 빗물로 스며

가슴의 뿌리를 적시면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내 사랑을 속삭여주고 싶다.

그렇게 또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구재기 시인 / 소주에 대하여

 

 

우리는 소주를 좋아했다.

입술을 제 빛으로 촉촉이 적시고

맑음을 가진

소주와 같은 사랑을 했다.

 

남들처럼 입술에 거품을 물고

배부르게 사랑하는 걸 싫어했다.

 

우리의 사랑은 가난해서 좋았다.

가난을 만날 때마다 슬픔이 자주 일었다.

 

가난은 서로 나눌 슬픔이 있다는 것

 

우리는 슬픔을 나누기 위해

곧잘 사랑을 마셨다.

 

사람들처럼 거품을 물지 않고

우리는 맑은 사랑으로 입술을 적시며

슬픔으로 가까이 슬픔을 길러

더욱 더 가난하게 소주를 마셨다.

 

 


 

 

구재기 시인 / 오늘이고 싶다

 

 

매양 오늘 같이

사랑에 취하고 싶다

바람이 불고

간간히 소나기 내리듯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싶다

산등성이로 이는 구름 속에 묻혀

지상의 어느 누구도 바라볼 수 없는

하늘의 자리를 마련하고

햇살처럼 찬연히, 뜨거웁게

온 몸을 달구고 싶다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해도

오늘 같이

오늘의 사랑은 오늘이고 싶다

 

 


 

 

구재기 시인 / 잡초

- 둑길行

 

 

밤새도록

폭풍우가 몰아쳤는데도

자고 일어나 나아가 보니

둑길의 잡초들이 살아 있었다

아, 아침 햇살 속에서

진땀을 흘리며

하이야니 저런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구재기(丘在期) 시인

호. 신곡(新谷). 1950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충남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1978년 《현대시학》에서 시부문 추천 완료(전봉건 시인 추천)로 등단. 고등학교 국어교사. 시집으로 『농업시편』, 『바람꽃』, 『아직도 머언 사람아』, 『삼 십리 둑길』, 『둑길行』, 『 빈손으로 부는 바람』, 『들녘에 부는 바람』, 『정말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 속의 날 지우는 일이다』, 『겨울은 옷을 벗지 않는다』, 『콩밭 빈 자리』, 『千房山체 오르다가』, 『살아갈 이유에 대하여』, 『강물』 등이 있고  제 2회 충남문학상, 충청남도 문화상 문학부문, 제6회 시예술상 수상. 현재 충남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