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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 개나리 꽃대에
개나리 꽃대에 노랑불이 붙었다. 활활. 개나리 가늘은 꽃대를 타고 올라가면 아슬아슬 하늘 나라까지라도 올라가 볼 듯 심청이와 흥부네가 사는 동네 올라가 볼 듯
나태주 시인 / 겨울 연가
한겨울에 하도 심심해 도로 찾아 꺼내 보는 당신의 눈썹 한 켤레. 지난 여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던 그것들.
움쩍 못하게 얼어붙은 저승의 이빨 사이 저 건너 하늘의 한복판에.
간혹 매운 바람이 걸어 놓고 가는 당신의 빛나는 알몸. 아무리 헤쳐도 헤쳐도 보이지 않던 그 속살의 깊이.
숙였던 이마를 들어 보일 때 눈물에 망가진 눈두덩이. 그래서 더욱 당신의 눈썹 검게 보일 때.
도로 찾아 드는 대이파리 잎마다에 부서져 잔잔히 흐느끼는 옷 벗은 당신의 흐느낌 소리. 가만가만 삭아 드는 한숨의 소리.
나태주 시인 / 그리움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나태주 시인 / 내가 꿈꾸는 여자
1 내가 꿈꾸는 여자는 발가락이 이쁜 여자. 발뒤꿈치가 이쁜 여자. 발톱이 이쁜 여자.
정말로 내가 꿈꾸는 여자는 발가락에 때가 묻지 않은 여자. 발뒤꿈치에 때가 묻지 않은 여자. 발톱에 때가 묻지 않은 여자.
그리고 감옥 속에 갇혀서 다소곳이 기다릴 줄도 아는 발을 가진 그러한 여자.
2 그녀의 발은 꽃이다. 그녀의 발은 물에서 금방 건져낸 물고기다. 그녀의 발은 풀밭에 이는 바람이다. 그녀의 발은 흰 구름이다.
그녀의 발은 내 가슴을 짓이기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녀의 발아래서 나의 가슴은 비로소 꽃잎일 수 있다. 그녀의 발아래서 나의 가슴은 비로소 흰 구름일 수 있다. 금방 물에서 건져낸 물고기일 수도 있다.
나태주 시인 /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개끔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時祭 지내려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對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 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 가을 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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