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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서화 시인 / 닻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3.

이서화 시인 / 닻

 

 

  새로 생긴 대형마트는

  거대한 상선(商船)같이 떠 있다

  주말이면 수백 대의 차들이 실려 있는 주차장

  그 건너편 도로에 입점반대 대책위원회 불빛이

  집어등처럼 반짝이다 사라졌다

  붉고 검은 글자의 돛이 펄럭거리던 천막 한 척

  물길도 없고 정박지도 아닌 노상에 떠 있었다.

  신대륙을 찾고자 한 적도 없고

  늘 그 자리인 날들로 출발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 사이 눈이 내리고

  추운 상권으로 손님이 줄고

  따뜻한 진열과 따뜻한 시식코너가 있는 쇼핑이 붐볐다.

 

  꽹과리 소리가 녹 슬만하면 울리고

  호객소리 대신 구호가 울려 퍼지고

  그 사이 신호등이 바뀌고 자동차 경적이 울리고

  검은 저녁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얼음이 얼고.

 

  바람을 타지 못한 돛이 내려지고

  대형마트 입구는 여전히 정체되고 있을 뿐이다

  천막이 철거되고

  빈 간판들이 내려지고

  수로 같던 골목은 꽝꽝 얼어간다

  곧 공약이 난무하는 선거철이 얼음을 깨고 지나갈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4월호 발표

 

 


 

이서화 시인

1960년 강원도 영월에서 출생. 상지영서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8년 《詩로 여는 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