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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이랑 시인 / 눈 오시는 밤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

 

 정이랑 시인 / 눈 오시는 밤

 

 

  산의 등줄기를 덮고 나서, 그는

  무엇인가 할 일이 있다는 듯

  마을로 엉금엉금 내려오고 있다

  숲속 어디쯤에서 놓아버리고 싶었던 길,

  발끝에 부딪치는 어둠 지게로 짊어지고

  딱딱한 담벼락 모퉁이 얼굴 문지르면

  그제서야 몸뚱아리 뒤척이는 돌멩이들

  이 한 몸 섞여질 수 없는 것일까

  푸르름 피해 떠나온 그들

  발등 핥으며 드러누울 즈음,

  구경나온 불빛마저 포개지는 밤

  포갤수록 하나의 빛깔로만 노래하는 그들

  저마다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부푸는 마당가에 마음 끌어내어

  사람들아, 한바탕 웃어젖혀 보아라

  이승 다녀간 누군가의 숨결소리

  산비탈 거머쥐고 꿩이 알 품은 듯

  그처럼 솟은 한 채 집

  오늘밤 몰래 몰래 품어보려 했음인가

 

웹진 『시인광장』 2012년 3월호 발표

 

 


 

정이랑 시인

1969년 경북 의성 출생.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황금알, 2005)와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문학의전당, 2011)이 있음. 현재 〈사림시〉, 〈시원〉  동인으로 활동.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