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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용목 시인 / 다른 곳으로 꿈꾸러 간다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

신용목 시인 / 다른 곳으로 꿈꾸러 간다

 

 

  밧줄을 당겨놓고 그 위를 걷는 광대처럼

 

  작두를 세워놓고 그 위에 뛰는 무당처럼

 

  이를테면 서울에서 여수까지 철로의 길이만큼 긴 기차

 

  우리는 신발 속에서만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가진 가장 깊은 바닥 속에서만

 

  겹겹이 뻗은 산맥의 이름이 아니다

  푸르게 휘는 해변의 이름이 아니다

 

  밧줄을 놓친 눈빛이 백한 칸 백두 칸 백세 칸 산맥을 잘라 담은 상자로 깨어질 때

  작두에 베인 가슴이 다음 칸 다음 칸 다음 칸 해변에 뿌린 피의 동이로 쏟아질 때

 

  광대의 웃음을 닮은 무당의 예언으로

  무당의 미래를 닮은 광대의 표정으로

 

  이를테면 서울에서 여수까지 철로의 길이만큼 긴 플랫폼

 

  어디서 타도 좋고 어디에서 내려도 괜찮았다 출발과 도착이 하나인 여행에서

 

  하나 둘 셋 그리고 누군가 신발을 벗고 철로로 떨어졌다

 

  하나의 선을 따라 타들어가는 불꽃을 달고

  하나의 선의 끝에 매달아놓은 화약을 향해

 

웹진 『시인광장』 2012년 3월호 발표

 

 


 

신용목 시인

1974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2004)와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창비, 2007)가 있음. 시작문학상과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