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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용택 시인 / 내가 불입니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4.

김용택 시인 / 내가 불입니다

 

 

언젠가 부터

당신을 향해 타오르는 사랑의 불을

나는 물로 끌수 있을지 알았습니다

 

불길이 목울대를 넘나들 땐

한 방울의 물을 찾아

천지를 헤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불길은 갈증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어느덧

물로 끌 수 없는

큰 불길에 싸여 있는 내 가여운 영혼

한 방울의 물을 찾아

천지를 헤매고도 남을

이 영혼을 당신은 아시기나 한지요

 

아,

그냥 두지요

재가 되도록 타게 그냥 두지요

 

불은 타올라야 합니다

타오르는 불에

몇 방울의 물은 물이 아닙니다

그도 따라 뜨거운 불입니다

 

아,

당신을 향해 타오르는

이 불길로 내가 다 타겠습니다

 

내가 불이 되겠습니다

 

 


 

 

김용택 시인 / 늘 보고 싶어요

 

 

오늘

가을 산과 들녘에 물을 보고 왔습니다

산골 깊은 곳

작은 마을 지나고

작은 개울들 건널 때

당신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산의 품에 들고 싶었어요, 깊숙히

물의 끝을 따라 가고 싶었어요

물소리랑 당신이랑 한없이

 

늘 보고 싶어요

늘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에겐 모든 것이 말이 되어요

십일월 초하루 단풍 물든 산자락 끝이나

물굽이마다에서

당신이 보고 싶어서,

당신이 보고싶어서 가슴이 저렸어요

 

오늘

가을 산과 들녘과 물을 보고

하루 왼종일

당신을 보았습니다

 

 


 

 

김용택 시인 / 단 한번의 사랑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숲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

차곡차곡 솔잎 쌓인

고요한 그 숲길에서

오래 이룬

단 하나

단 한번의 사랑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랑입니다

 

 


 

 

김용택 시인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김용택 시인 / 당신 없는 하루

 

 

해 뜨니

앞 강물은 저리 흐르요

당신 떠난 이 나라

쳐다볼 곳 없는 내 눈길이

먼 허공을 헤매이고 헛헛한 마음도

이리 기댈 곳 없으니

이 맘이 시방 맘이 아니요

차라리

이 몸 이 맘

이 강물이 다 가져가불고

저 강물에 얼른얼른

오늘 해도 져불면 좋것소.

 

 


 

김용택(金龍澤, 1948 ~ ) 시인.

전북 임실 출생.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 1982년 “21인 신작 시집”에 ‘섬진강’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섬세한 시어와 서정적인 가락을 바탕으로 농촌의 현실을 노래하였다. 섬진강 곁에 거처를 두고 초등 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그는 이제까지 시집 『섬진강』(1985) · 『맑은 날』(1986) · 『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 · 『꽃산 가는 길』(1988) · 『그리운 꽃편지』(1989) ·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 · 『강 같은 세월』(1995) · 『그 여자네 집』(1998) 등을 펴낸 바 있다. 김용택은 1986년에 ‘김수영 문학상’, 1997년에 ‘소월 시문학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