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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 봄이 그냥 지나요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 있어요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들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 데 꽃 피어날 거예요 생각해 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보면 쓸쓸하고 달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울면 밤새워 뒤척여져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 가더래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 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 두른 채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새 봄이 그냥 가고 있어요.
김용택 시인 / 빗장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 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 달아도 내달아도 속 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으로 먼 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김용택 시인 / 사람들은 왜 모를까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 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김용택 시인 / 세상의 비밀들을 알았어요
닫힌 내마음의 돌문을열며 꽃바람 해바람으로 오신 당신 당신으로 하여 별이 왜 반짝이는지 꽃이 왜 꽃으로 피어나는지 세상에 가득한 그런 가만가만한 비밀들을 알게 되었어요
아, 내 가는 길목마다 훤하게 깔린 당신 돌부리 끝에 걸려 넘어져도 거기 언뜻 발끝이 아프게 부서지는 당신 이 초겨울 빗줄기 속에서도 들국 같은 당신의 얼굴이 하얗게, 하얗게 줄지어 달려옵니다
이 길에 천둥 번개 칠까 두려워요
김용택 시인 / 슬픔
외딴 곳 집이 없었다 짧은 겨울날이 침침했다 어디 울 곳이 없었다
김용택 시인 / 약이 없는 병
그리움이, 사랑이 찬란하다면 나는 지금 그 빛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아파서 못 견디는 그 병은 약이 없는 병이어서 병중에 제일 몹쓸 병이더이다
그 병으로 내 길에 해가 떴다가 지고 달과 별이 떴다가 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수없이 돌아흐르며 내 병은 깊어졌습니다
아무리 그 병이 깊어져도 그대에게 이르지 못할 병이라면 이제 나는 차라리 그 병으로 내가 죽어져서
아, 물처럼 바람처럼 그대 곁에 흐르고 싶어요
김용택 시인 / 집
외딴집, 외딴집이라고 왼손으로 쓰고 바른손으로 고쳤다
뒤뚱거리며 가는가는 어깨를 가뒀다
불 하나 끄고 불 하나 달았다
가물가물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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