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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용택 시인 / 참 좋은 당신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7.

김용택 시인 / 참 좋은 당신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시인 / 푸른 나무

 

 

나도 너 같은 봄을 갖고 싶다

어둔 땅으로 뿌리를 뻗어내리며

어둔 하늘로는 하늘 깊이 별을 부른다 너는

나도 너의 새 이파리 같은 시를 쓰고 싶다

큰 몸과 수많은 가지와 이파리들이

세상의 어느 곳으로도 다 뻗어가

너를 이루며 완성되는 찬란하고 눈부신 봄

나도 너같이 푸르른 시인이 되어

가난한 우리나라 봄길을 나서고 싶다.

 

 


 

 

김용택 시인 / 푸른 나무 1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 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에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 아래.

 

 


 

 

김용택 시인 / 푸른 나무 2

 

 

너를 부르러

캄캄한 저 산들을 넘어

다 버리고 내가 왔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그리운 너의 이름을 부르러

어둔 들판 바람을 건너

이렇게 내가 왔다

이제는 목놓아 불러도

없는 사람아

하얀 찔레꽃 꽃잎만

봄바람에 날리며

그리운 네 모습으로 어른거리는

미칠 것같이 푸르러지는

이 푸른 나뭇잎 속에

밤새워 피를 토하며

내가 운다.

 

 


 

 

김용택 시인 / 푸른 나무 3

 

 

나무야 푸른 나무야

나는 날마다

너의 그늘 아래를 두 번씩 지난다

해가 뜰 때 한 번

그 해가 질 때 한 번

 

걷다가 더울 때 나는 너의 뿌리에 앉아

너의 서늘한 피로 땀이 식고

눈보라칠 때 네 몸에

내 몸을 다 숨기고

네 더운 피로 내 몸을 덥히며

눈보라를 피했다

나무야

잎 하나 없는 잔가지 그림자만

맨땅에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내겐 푸르른 나무야

내가 서러울 때

나도 너처럼 찬바람 가득한

빈 들판으로 다리를 뻗고

달이 구름 속에 들 때 울었다

목놓아 운 적도 있었단다 나무야

푸른 나무야

우리 마을이 네게서 시작되고

네게서 끝나듯이

내 삶의 기쁨도

네게서 시작되고

네게서 이루어졌다

 

오늘은 나와 함께 맘껏 푸르른 나무야

 

 


 

 

김용택 시인 / 푸른 나무 4

 

 

우산 없이 학교 갔다 오다

소낙비 만난 여름날

네 그늘로 뛰어들어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서서

비 피할 때

저 꼭대기 푸른 잎사귀에서

제일 아래 잎까지

후둑후둑 떨어지는 큰 물방울들을 맞으며

나는 왠지 서러웠다

뿌연 빗줄기

적막한 들판

오도 가도 못하고 서서 바라보는 먼 산

느닷없는 저 소낙비

 

나는 혼자

외로움에

나는 혼자 슬픔에

나는 혼자

까닭없는 서러움에 복받쳤다

외로웠다

 

네 푸른 몸 아래 혼자 서서

그 수많은 가지와

수많은 잎사귀로

나를 달래주어도

나는 달래지지 않는

그 무엇을, 서러움을 그때 얻었다

그랬었다 나무야

오늘은 나도 없이

너 홀로 들판 가득 비 맞는

푸르른 나무야

 

 


 

김용택(金龍澤, 1948 ~ ) 시인.

전북 임실 출생.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 1982년 “21인 신작 시집”에 ‘섬진강’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섬세한 시어와 서정적인 가락을 바탕으로 농촌의 현실을 노래하였다. 섬진강 곁에 거처를 두고 초등 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그는 이제까지 시집 『섬진강』(1985) · 『맑은 날』(1986) · 『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 · 『꽃산 가는 길』(1988) · 『그리운 꽃편지』(1989) ·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 · 『강 같은 세월』(1995) · 『그 여자네 집』(1998) 등을 펴낸 바 있다. 김용택은 1986년에 ‘김수영 문학상’, 1997년에 ‘소월 시문학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