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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용 시인 / 호두까기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4.

김신용 시인 / 호두까기

 

 

  이뻐라, 다람쥐가 나무에서 호두를 따가는 모습

  마치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처럼 쪼르르 나무 위로 올라가

  가지에 달린 호두를 입으로 톡 건드려서, 꼭지를 콕 깨물어서

  도르르 땅으로 굴려, 제 머리보다 큰 둥근 호두알을

  두 팔로 꼭 껴안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보는 눈마다 어머, 어머! 탄성의 눈빛을 켜게 하는

  저 직립보행의 모습

 

  다람쥐는, 호두의 딱딱하고 야문 껍질을 어떻게 깰까?

  어금니로 깨물어도 잘 깨지지 않는, 둥글고 단단한 껍질을

  어떻게 깨, 유백색의 고소한 속살을 꺼내먹을까?

  어쩌면 툭 튀어나온 앞니를 작고 앙증맞게 생긴 도끼처럼 사용하겠지

  얼어붙은 바다를 쪼개는, 그 도끼처럼*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뇌와 닮은 호두

  눈으로 본 것은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기억의 저장고를 가진 뇌

 

  까마귀는, 둥글고 딱딱한 호두를 물고와 찻길에 놓아둔다

  차의 둥근 바퀴는 굴러가면서 단단한 호두의 껍질을 깨준다

 

  순간, 까마귀는 깨진 껍질 속의 알맹이를 물고 날아가 가지에 앉아 맛있게 먹는다

 

  놀라워라, 까마귀는 어떻게 바퀴가 호두의 껍질을 깨주는 도구라는 것을 알았을까?

 

  굳어지고 딱딱해진 두뇌의 껍질을 벗겨주는, 저 호두까기

  다람쥐와 까마귀가 가르쳐주는 엉뚱한 행동의 놀라움!

 

  저기 봐! 또 다람쥐가 나무에서 호두를 훔쳐간다

  뒤뚱뒤뚱, 아직은 서툴지만 놀라운 직립보행의 발걸음으로

 

  내 꺼진 상상력에 반짝 필라멘트를 켜는, 그 발걸음으로

 

*카프카

 

웹진  『시인광장』 2012년 5월호 발표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출생.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등이 있음. 2005년 제7회 천상병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