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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배창환 시인 / 시인의 초상(肖像)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9.

배창환 시인 / 시인의 초상(肖像)

 

 

  시인 제자, 보람이가 그려준 내 얼굴에는

  내 혼이 들어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액자 속, 빳빳하고 누런 재생지에

  흑백의 단순한 선과 면이 만들어낸,

  나보다도 더 나를 닮은

  얼굴

 

  어찌 보면 이라크전 종군기자처럼, 전쟁의 포화, 먼지와 화약 냄새 따라와

  서 있는 듯도 하고

  하얀 구름 뭉게뭉게 핀 언덕에

  숨은 꽃들을 찾으러 와서

  호미 들고 선 야생식물학자 같기도 하지만

  실은 겨울 저녁, 붉은 햇살 비친 얼음산 조각 앞에

  헐렁하게 웃고 선, 시인의

  초상

 

 

  아마도 내 혼을 나 몰래 살짝 불러내어

  바람 앞에 세워놓고 거침없는 붓놀림으로

  죽죽 그어 메워 나갔을,

  그래서 더 깊이 따스하고

  내게는 더 신비롭게

  다가오는,

 

웹진 『시인광장』 2012년 7월호 발표

 

 


 

배창환 시인

1955년 경북 성주에서 출생. 경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1년 《세계의 문학》에 〈1980년 어느 날〉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잠든 그대』,『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백두산 놀러 가자』,『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등이 있음. 「분단시대」 동인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