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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지소 시인 / 먹물을 들였더니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9.

유지소 시인 / 먹물을 들였더니

 

 

  비그친다음날오후두시반의마알간하늘색 윗도리에 먹물을 들였더니

  석달열흘참고참았던울음보터지기직전의하늘색 윗도리가 나온다

 

  오, 이건 아니다

  내가 원한 건 단순한 암묵색일 뿐인데

 

  발인날아침막파헤친시체구덩이의황토색 바지에 먹물을 들였더니

  비석도상석도없는반넘어허물어진무덤가의쑥대밭색 바지가 나온다

 

  오, 이런, 이건 더더욱 아니다

  내가 정말 원한 건 달빛어스름하나없는그믐밤색일 뿐인데

 

  끝내떨어지지못하고간당간당매달려있는메마른가랑잎색 원피스에 먹물을 들였더니

  강원도심심산골적멸보궁의낡은기왓장색 원피스가 나온다

 

  오, 끝내 빗나간 내 의도들

  내가 진정 원한 건 다타버린숯덩이같은죽은사람의눈동자색일 뿐인데

 

웹진 『시인광장』 2012년 7월호 발표

 

 


 

유지소 시인

경상북도 상주에서 출생. 2002년《시작》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제4번 방』(천년의시작, 2006)이 있음. 제5회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좋은시賞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