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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위선환 시인 / 시간 구부리기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9.

위선환 시인 / 시간 구부리기

 

 

모든 음악에 비가 내린다 구부려서, 이튿날과 다음 날이 지나간 하룻날에 날은 개고

이래로

나는

등가죽이 마른다

 

먼 저기와 가까운 여기와 곳곳에 티끌들이 난다 구부려서, 등 기대고 숙인 목덜미에

먼지가 쌓인다

 

물이 줄은 강굽이에서 은빛 비늘들이 빛난다 나는 꿇었고 두 주먹 쥐어 무릎에 얹고

구부려서,

한 이름을 부른다

 

산 너머로 날아간 목 긴 새의 목 잠긴 울음소리를 듣는다 구부려서, 먼 산 그늘에서

가뭇가뭇

나비가 난다

 

대지는 낮고 미리 식었고 식은 바람 냄새가 난다 구부려서, 손톱과 발톱이 갈라지고

발가락에

티눈이 자란다

 

등불 들어 제 주검을 비춰보는 사람이 있다 구부려서, 하루가 다 기운 늦은 저녁에

세워둔 돌이

넘어진다

 

마지막 악장에는 전갈좌가 빛난다 구부려서, 북한강에 잠긴 별자리가 소란하므로

한 사람이 허리 꺾고

들여다보는,

 

계간『문학과 사람』 2020년 봄호 발표

 

 


 

위선환 시인

전남 장흥에서 출생. 2001년 《현대시》로 작품활동 시작.『새떼를 베끼다』,『두근거리다』,『수평을 가리키다』,『시작하는 빛』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