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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 / 病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기형도 시인 / 껍질
空中을 솟구친 길은 그늘을 끼고 돌아왔고 아무것 알지 못하는 그는 한줌 가슴을 버리고 떠났다.
車窓 안쪽에 비쳐오는 낯선 거리엔 大理石보다 차가운 내 幻影이 떠오른다. 아무것 알려 하지 않는 그는 미련 없이 머리를 깎았다.
그는 나보다 앞선 歲月을 살았고 나와 同甲이었다.
감싸안은 두 발이 천장을 디디고 휘청거리는데 단단히 굳어버린 鋪道엔 바람이 일고 이 밤은 여느 때 마냥 춥다
기형도 시인 / 꽃
내 靈魂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庭園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기형도 시인 / 노인들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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