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형도 시인 / 달밤
누나는 조그맣게 울었다. 그리고, 꽃씨를 뿌리면서 시집갔다.
봄이 가고. 우리는, 새벽마다 아스팔트 위에 도우도우새들이 쭈그려앉아 채송화를 싹뚝싹뚝 뜯어먹는 것을 보고 울었다. 맨홀 뚜껑은 항상 열려 있었지만 새들은 엇갈려 짚는 다리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바람은, 먼 南國(남국)나라까지 차가운 머리카락을 갈기갈기풀어 날렸다. 이쁜 달[月]이 노랗게 곪은 저녁, 리어카를 끌고 新作路를 걸어오시던 어머니의 그림자는 달빛을 받아 긴 띠를 발목에 매고, 그날 밤 내내 몹시 허리를 앓았다.
기형도 시인 / 봄날은 간다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는 몇 장 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기형도 시인 / 아이야 어디서 너는
아이야, 어디서 너는 온몸 가득 비[雨]를 적시고 왔느냐. 네 알몸 위로 수천의 江물이 흐른다. 찬 가슴팍 위로 저 世上을 向한 江이 흐른다.
갈밭을 헤치고 왔니. 네 머리카락에 걸린 하얀 갈꽃이 누운 채로 젖어 있다. 그 갈꽃 무너지는 西山을 아비는 네 몸만큼의 짠 빗물을 뿌리며 넘어갔더란다. 아이야 아비의 그 구름을 먹고 왔느냐.
호롱을 켜려무나. 뿌옇게 몰려오는 소나기를 가득 담고 어둠 속을 흐르는, 네 눈을 켜려무나. 하늘에 실노을이 西行하고 어른거리는 불빛은 꽃을 쫓는다.
닦아도닦아도 흐르는 꽃술[花酒] 같은 네 江물. 갈꽃은 붉게붉게 익어가는데, 아이야 네 눈 가득 아비가 젖어 있구나.
기형도 시인 / 쥐불놀이
어른이 돌려도 됩니까? 돌려도 됩니까 어른이?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왔구나 대보름의 달이여 올해는 정말 멋진 연애를 해야겠습니다 모두가 불 속에 숨어 있는걸요? 돌리세요,나뭇가지 사이에 숨은 꿩을 위해 돌리세요,술래 는 잠을 자고 있어요 헛간 마른 짚 속에서 대보름의 달이여 온 동네를 뒤지고도 또 어디까지?
아저씨는 불이 무섭지 않으셔요?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최승자 시인 / 내 청춘의 영원한 외 4편 (0) | 2020.08.13 |
|---|---|
| 도종환 시인 / 만들 수만 있다면 외 4편 (0) | 2020.08.13 |
| 나희덕 시인 / 정신적인 귀 외 4편 (0) | 2020.08.13 |
| 최춘희 시인 / 저녁의 몽상 (0) | 2020.08.12 |
| 장정자 시인 / 왕쥐똥나무 왕국 (0) | 2020.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