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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희 시인 / 저녁의 몽상
고층 아파트 베란다 창문에 박쥐 한 마리 매달려 있다 마주 보이는 숲에서 날아온 걸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도 없이 절벽에 바짝 몸을 붙여 숨고르기 들어간 크라이머 같다 어릴 적 시골집 평상에 누워 있으면 저녁 어스름 깔린 바람길 가르며 떼로 몰려오던 그림자군단 고단했던 하루의 대미를 장식하는 후렴구처럼 장엄하게 울려 퍼지던 울음소리 날개 짓 소리 이젠 먼 꿈속의 일, 변형된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동굴 속의 은둔자들, 평생을 거꾸로 허공에 몸을 맡긴 채 수천 년을 어둠 속 수도승으로 생을 담금질했다 단 한 번도 빛을 향하여 얼굴 드러낸 적 없는, 슬픔도 외로움도 골똘히 명상하며 신을 향한 기도로 승화시켰다 깜깜한 하늘을 열어 더 높은 곳을 향하여 허공을 박차고 오르는 비밀결사대여! 서쪽하늘 물들이는 나의 슬픔을 베어다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단칼에 목을 쳐다오
누가 저 발 디딜 틈 없는 외벽 난간에 대롱대롱 그를 걸어 두었을까
웹진 『시인광장』 2012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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