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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 시인 / 인형 뽑기
그들은 나더러 사냥꾼이 되라 해요
질주와 군무를 잊어버리고 겁먹은 채 웅크린, 저 갇힌 짐승들을 잡으라 해요 거짓 야성을 연마하라 해요
껍질은 내다 팔아 혼례를 치르고 고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먹이고
신부가 누울 방 한 칸을 차지한 짐승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아직 시작되지 않은 아늑한 사랑을 위한 신혼의 방을 차리라 해요
인형상자 만한 방 하나 얻기 위해 얼마나 피 흘려야 하는지 몰라 이 도시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오백 원 동전을 움켜쥐고 사냥터로 모이는 밤
나는 문도 벽도 지붕도 없는 강으로 가요
고기 맛에 중독된 피 묻은 입, 피 묻은 손을 씻고 강물을 끌어와 내 안의 피투성이 사냥터를 씻어 내리고
깎아지른 막막 캄캄 바위절벽에 없는 사랑의 기록 찬란한 가난의 암각화를 새기러 가요
최정란 시인 / 장미키스
장미와 입을 맞추었지 가시를 끌어당겨 장미 향기를 입술 안으로 깊이 빨아들였지 장미는 벌린 내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내 심장을 꺼내 가졌지 그 날부터 나는 심장이 없지
장미와 같은 시간을 호흡했지 바다와 하늘도 같은 고요를 들이쉬고 내쉬었지 별의 어깨를 출렁거리며 밤과 낮이 파도처럼 흰 한숨을 몰아쉬었지 그 날 장미에 심장이 생겼지 세상은 장미의 들숨과 날숨으로 채워졌지
나는 한 점 후회 남김 없어 다만 후렴이 들어간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지 짧은 시간을 함께 한 꽃은 빨리 지지 짧은 시간에 모든 숨결을 다 주기 때문이지
최정란 시인 / 접선
깜빡, 깜빡, 공중에서 모스부호가 만난다
마주 보는 아파트, 불 꺼진 앞 ,뒤베란다 담뱃불, 빛을 전송하는 두 남자
오늘도 별일 없었느냐고 말없는 안부가 공중을 오고 가지만 주차장에서 날마다 스쳐도 누구인지 서로를 알지 못한다
삶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 선으로 연결되어 그물코처럼 당겨지는 조직에 한 점으로 심겨진 스파이들
깊은 밤 같은 시간 깨어있는 담배 하나로 잠든 가족에게 보여주지 못한 서로의 어둠을 나눈다
필터로 다 걸러내지 못한 한 개피의 남자라는 기호, 외로움의 코드로 해독되지 않는 난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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