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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숙 시인 / 검은 집
떠나야 한다 환하게 웃던 그녀와 사진 속 노을의 수레국화가 이곳에서 백년을 머무는 동안, 집도 뿌리를 내렸다 서녘하늘 어둠을 몰고다니다 흙 속 바위를 단단히 거머쥐었다 햇빛은 졸졸 밤을 통하여 들어온다 기억은 반짝이며 상처난 식탁 모서리에 와 박힌다 나는 자주 천장 끝에서 캄캄한 구두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구두는 마룻바닥을 걸어다니지 않는다 현관문을 나서지도 않는다 죽은 신발장을 열면 그녀는 보이지 않고 매캐한 어둠만이 흐른다 갇혔다 그녀의 수레국화꽃 그늘에 갇혔다 손때 묻은 그녀의 둥근 거울에 내가 갇혔다 떠나야 한다 집은 지구로부터 맹렬히 솟아나야 한다 마른 꽃이파리를 걷어내며 다시 봄은 와서, 창문과 책상을 바람소리로 물들인다 그녀의 웃음 너머로 창밖을 바라다보면 나는 여전히 뒷모습이다 집은 동쪽과 먼 거리에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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