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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시인 / 꽃의 자존심
뭉쳐놓은 듯 버려놓은 듯 땅에 바짝 엎드려 꽃자루 없이 앉은 앉은뱅이 꽃 피우는 노랑 민들레
흔해서 보이지 않고 흔해서 짓밟히는 꽃이 제 씨앗 은빛으로 둥글게 빚는 바로 그 순간
하늘로 꽃대 단숨에 쑥쑥 밀어 올리는 꽃의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
정일근 시인 / 나무 기도
새해에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린 너무 빠른 속도다, 세상은 달려갈수록 넓어지는 마당 가졌기에 발을 가진 사람의 역사는 하루도 편안히 기록되지 못했다 그냥 나무처럼 붙박여 살고 싶다 한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어린 자식 기르며 말씀 빚어내고 빈가지로 바람을 연주하는 나무로 살고 싶다 사람들의 세상은 또 너무 입이 많다 입이 말을 만들고 말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리하여 입 속에서 전쟁이 나온다 말하지 않고도 시를 쓰는 나무의 은유처럼 온몸에 많은 잎을 달고도 진실로 침묵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침묵으로 웅변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삶은 베풀 때 완성되느니 그늘 주고 꽃 주고 열매 주는 나무처럼 추운 아궁이의 뜨거운 불이 되어주기도 하고 사람의 따뜻한 가구가 되는 나무처럼 가진 것 다 주는 나무로 살고 싶다 새해에는 그대를 위한 나무가 되고 싶다 그대는 나를 위해 나무가 되어다오 우리 나무와 나무로 만나 숲을 만들자 그런 사랑이 만드는 새로운 숲이 되자
정일근 시인 / 나에게 사랑이란
마음속에 누군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에 젊은 날엔 그대로 하여 마음 아픈 것도 사랑의 아픔으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그대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냅니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에 아득히 부는 바람에 잘가라 사랑아, 내 마음속의 그대를 놓아 보냅니다 불혹, 마음에 빈자리 하나 만들어놓고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어서 그 빈자리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어서 사람을 기다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나도 알게 되었나 봅니다
정일근 시인 / 마음속의 사람을 보내며
마음속에 누군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에 젊은 날엔 그대로 하여 마음 아픈 것도 사랑의 아픔으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그대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냅니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에 아득히 부는 바람에 잘 가라 사랑아, 내 마음속의 그대를 놓아 보냅니다. 불혹, 마음에 빈자리 하나 만들어 놓고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나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어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나도 알게 되었나봅니다.
정일근 시인 / 부석사 무량수
어디 한량없는 목숨 있나요 저는 그런 것 바라지 않아요 이승에서의 잠시 잠깐도 좋은 거예요 사라지니 아름다운 거예요 꽃도 피었다 지니 아름다운 것이지요 사시사철 피어 있는 꽃이라면 누가 눈길 한 번 주겠어요 사람도 사라지니 아름다운 게지요 무량수(無量壽)를 산다면 이 사랑도 지겨운 일이여요 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반짝하다 지는 초저녁별이어요 그래서 사람이 아름다운 게지요 사라지는 것들의 사랑이니 사람의 사랑 더욱 아름다운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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