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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천수호 시인 / 세 개의 형광등에 뜬 아홉 개의 질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2.

천수호 시인 / 세 개의 형광등에 뜬 아홉 개의 질문

 

 

  세 개의 형광등이 나란히 뜬 방

  불을 껐는데도 그 형체가 남아있다

  귀가 닫혀있는 질문은

  이렇게 사방이 희미해질 때 하는 거다

  눈도 없는 몇 개의 질문들이 천정에 거꾸로 매달렸다

  검은 우산의 귀가 활짝 펴졌다

  박쥐가 들끓던

  인도 괄리아르 만 싱 궁전의 지하 감옥 천정처럼

  몇 개의 가능한 답들이 잔발을 뗐다가 다시 붙인다

  어둠 속 질문은 주둥이가 긴 장화를 신고

  이 구석 저 구석을 저벅거린다

  석가모니가 아난다에게 한 세 가지 질문처럼

  질문의 입구가 너무 커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둠

  세 개의 형광등이 꺼지면서 꼬리가 아홉 개인 질문이 뒤섞였다

  빛이 밝혀낼 답은 없지만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린다.

  깜 빠르르르 팍, 주문 같은 불이 켜지니

  어둠 속에 어슬렁거리던

  아홉 개의 질문들이 재빨리

  벽의 부조 속으로 스며든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8월호 발표

 

 


 

천수호 시인

1964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 대구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아주 붉은현기증』(민음사, 2009)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