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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경숙 시인 / 소셜 라이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7.

황경숙 시인 / 소셜 라이트

 

 

  못난 4월의 뒤꿈치가 벗겨지고 비자림은 판도라의 회오리 속에 갇혔어요

  지난 가을 꽃과 바람의 축제를 잊고

 

  봄은 여기 없는데 청명이 찾아왔어요

  처녀 적 당신 눈에 가둔 스프링 같은 내 몸매처럼 부풀어 오르는 흙의 속살을 드러내며

 

  가시울타리 같은 기억을 켜면 헤아릴 수 없는 이름들이 실오라기처럼 풀려 나와요

  쓰린 눈에 담긴 나와 당신이라는 헌 가방은 가벼워지지 않는데

 

  무거운 봄날 어디를 찾아 가려고 사각의 세상이 지은 모퉁이를 돌고 도는 것일까요

  순한 바람의 씨앗 같은, 서툰 당신이나 잘 익은 나의 간극을

 

  겨울의 더께를 한 겹씩 벗으니 발가락에 새순이 돋네요

  그걸 산란(産卵)이라 부르니 거기 앉은 새의 날개가 말발굽처럼 바빠지잖아요

  저걸 볼 수 있다면 당신에겐 잉태(孕胎)를

 

  숲이 따뜻해지니 푸른 리듬 부풀어 오르는 복숭아 빛 가는 발목이 칭얼거려요

  냉정한 액정을 깨뜨리고 언 땅에 흩뿌릴 거짓말 같은 봄의 에테르를 깨우겠어요

 

  개미 알처럼 흩어진 사각의 기억들

 

  불을 켜는 마음 바닥에는 화이트, 화이트,

 

웹진 『시인광장』 2012년 9월호 발표

 

 


 

황경숙 시인

전남 여수에서 출생. 2009년 《애지》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