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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원도 시인 / 귀뚜라미 재회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8.

정원도 시인 / 귀뚜라미 재회

 

 

  곤충들에게도 저만의 글자가 있다

  우거진 숲 속 어디에다 기록을 숨겨 두는지

 

  달력에 입추라 적힌 날이 다가오자

  어김없이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수그러들고

  비워진 허공 가득 달빛 맞으며 몰려나와

  집안으로 침투해오는 귀뚜라미들의 날갯짓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지난 해 현장일하다 낙상 사고 당한 후, 기억도 없이

  실려 온 병원에서 막 깨어났을 때 들려오던 호출음이

  다시금 나의 긴 잠을 일으켜 세운다

 

  오리무중 아들의 부상을 간호하던 팔순 어머니

  예전이면 벌써 잡도리했을 그를

  귀하게 생포해야 하는 까닭 먼저 아시고

  불편한 몸으로 붙잡아 창문 너머로 날려 보낸다

 

  귀뚜라미의 어머니이기도 한 사실을

  짐짓 알아채신 까닭이다

 

  창밖으로 튀어 나가던 귀뚜라미가

  달력에 적힌 입추라는 두 글자를 냉큼

  입에 물고 달아난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0월호 발표

 

 


 

정원도 시인

1959년 대구에서 출생. 1985년 《시인》誌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그리운 흙』(시인사, 1987)과 『귀뚜라미 생포작전』(푸른사상, 2011)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