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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원 시인 / 문자 보호구역
국적기의 날개가 접히고 브릿지를 통과하자 종달새 소리가 들려왔다 시트러스향이 번지는 통로를 밟고 외교통상부에서 띄운 파견 나온 글자들,
위급한 상황에 전화하세요 아무도 모르게 날아온 삼만 피트의 하늘을 조국의 새들은 비상구를 통해 먼저와 숨어 있었다 아지랑이가 추락하는 캄캄한 절벽의 시간에도 이 번호는 나를 지켜주겠다고 미아가 되어도, 키드냅핑 되어도 0번을 누르고 지나가는 바람이 너무 두꺼워 나는 자꾸 하이픈을 찍었다
치약 100그램짜리 한통 쓰고 나면 돌아올 시간 샴푸 몇 봉지 쓰고 나면 궁금해질 나의 집 체게바라의 동상을 지날 때 다시 한 번 문자들이 갑옷을 입고 액정 화면 가득 줄을 서고 있었다 이건 보호가 아니고 감시야 폐허야 나를 따라다니는 아사달 연못가에 신발 벗어놓고 낙하할 때 도서관 옥상에서 유유히 돌아가던 프로펠러야
국경을 넘으면 또 불시에 나타나 도열하는 병마총의 기본 서체들 나는 매일 누군가의 우산 속에서 예의바른 글자와 전언을 중독성으로 기다렸다 위급한 상황에서 전화하라는 영사관 번호를 가방 속에 넣으며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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