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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형 시인 / 바다 그림책
바닷가 일몰 포인트에 흔히 보는 녹슨 철제 의자 두 개 전직 축구선수와 전직 마약 밀매상 나란히 늙어가는 친구가 앉았다 마약밀매에 필요한 것은 처음도 끝도 용기라네 모터보트 뒤꽁무니로 흰 선을 그으며 쥐와 고양이처럼 꼬리 빠지게 쫓고 쫓겼지 한 방에 모든 걸 잃어버리는 곳까지 가야 하는 거지 뒤쫓는 자가 있으면 사자 입김 같은 용기도 뿜어나는 법이야 그런 거지, 이게 갓 잡아올린 성게라네 술잔에 받아 한 입에 털어넣게나 마약을 숨긴 모터보트가 내빼던 속도에서 커브를 틀면 리그에서 진 축구선수가 그라운드를 느릿느릿 걸어나온다 잔디 바닥에 꼬꾸라진 내 귀에 대고 떨어지는 해가 소근거렸지, 못 알아들었기에 뒷날 다시 눈을 찔러댔지 날마다 말해줬건만 듣지 못했군 젊어서는 귀에 들어오는 소리 있던가 바다 그림책은 아무리 봐도 너덜거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기 눈에 또렷한 페이지를 다시 펼쳐놓는다 바다 속 떠밀려다니다가 해안에 올라온 돌멩이 해그림자 검버섯으로 내려앉는 방파제서 둘은 나란히 앉았다 전직 마약밀매상과 전직 축구선수 녹슨 철제의자 삐걱거리며 삭은 이빨을 드러내는 바람 요 성게 좀 보라지, 노란 알이 꽉 찼네 긁어줄테니 자 먹어보게, 상긋한 이 맛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일 걸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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