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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시인 / 물 속의 책 · 2
물 밑바닥에 누워 물의 책을 읽는다
두꺼운 몸을 펼쳐 책장마다 흐르는 물을 받아들이는 일 몸피에 얼룩이 져도 좋으니 나를 흠씬 적시는 일 기억의 모든 문장, 빨간 펜으로 밑줄 그은 문장들 흐르는 물에 부풀어 흰 빛으로 터지는 일
누군가 던진 돌멩이의 파문에 책장이 찢어져도 물의 따스한 입술로 보다듬어 주는 일 상처난 글자들이 개구리 알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아도 동글동글한 조약돌이 될 때까지 흐르는 물살에 맡기는 일
잠처럼 푹 젖어 물 바깥 세상 일은 모두 잊는 일 딱딱하고 삐걱이는 글자들을 잠 밖으로 몰아내고 떨리던 눈꺼풀, 흰빛으로 터지던 웃음, 벙글던 콧망울 부드러운 문장들을 풀어 흐르는 물과 한 몸이 되는 일
눈을 뜨면 깊어진 몸을 뚫고 다시 태어나는 말 부드러운 몸에 가득 담기는 하늘빛 말 물 속에서 어느 누구도 읽지 않은 내 마음의 새 책을 펼친다 최초로 쓴, 최초의 문자들이 담긴 물 속의 푸른 책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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