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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유라 시인 / 내년 여름 해바라기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8.

박유라 시인 / 내년 여름 해바라기

 

 

  씨앗들은 몸 안에 있나 몸 밖에 있나

  문 앞에 엎드린 고양이가 골똘히

  만들어내는 곡선 그걸 살짝 집어다

  비개인 아침 옥수수 밭둑에 걸어둘까

 

  씨앗들을 단단히 붙드는 어떤 힘을 따라

  햇빛 쪽으로 앉으면

  그림자지게 마련인 뒤편 어디쯤

  해바라기 한참 지나 둥근 차일 아래

 

  올라갈 때 왼쪽 내려올 땐 오른쪽

  나는 남쪽 바닷가 언덕에서 내년 여름을 생각하지

  민소매 원피스 그 아래 흔들리는 손은

  무덤에서 희게 빛날 뼈가 만져져

  커다란 꽃무늬 가장자리부터 낡아가고

  계절은 다 지나서 생각은 자꾸 희미해지고

  의류수거함 어둠 속으로 던져 보낸 옷과

  안간힘을 쓰는 꽃들

 

  쉼 없이 증발하는 구름 그 너머

  고여 있을 시간들

  오지 않을 시간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0월호 발표

 

 


 

박유라 시인

1957년 부산에서 출생. 1987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야간병동』, 『갈릴레이를 생각하며』, 『푸른 책』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