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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유 시인 / 처여가스버스
처여가스버스라 씌어진 버스가 한참을 머물러 있다 처음엔 천연가스버스였을 테지만 ㄴ받침을 빠뜨린 채 서 있는 처여가스버스 버스는 마치 나를 처여하고 지나가는 것 같아서 어딘가에 서늘한 것을 두고 온 기분이 든다 언제부터 저 버스는 처여가스버스가 된 걸까 한 글자씩 받침이 빠져나간 천여였다가 처연이 되었을까 아니면 동시에 ㄴ받침이 떨어져 처여가 되었나 받침을 잃어버린 버스는 헛발질을 하다 나를 치고 지나가 멀어져 가는 버스 뒤꽁무니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것도 같고 냅다 주먹을 휘두른 것도 같고 발 동동 굴러 애태웠던 것도 같다 그 때부터 천여가 처녀로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처연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도 같다 한 때는 나도 저 버스처럼 천연사람이었을 텐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고 내릴 때쯤에서야 정류장에 놓고 온 우산이 생각나는 것처럼 돌아오지 못할 길에 눈알을 빠뜨린 채 나를 자꾸 치고 지나가는 것 같고 천여가 되바라진 처녀로 변해 누군가에게 질 나쁜 행실을 들켜버린 것도 같고 불 질러 버린 것도 같고 그래서 처연해지고 그래서 버스는 처연하게 굴러가는 것만 같다 천연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머뭇머뭇 주춤거리며 서 있던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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