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형철 시인 / 비탈
뿌리를 드러낸 후 사랑은 짓이 났다 했다 조무래기 별들이 산 너머 꼬리를 이을 때 어두운 하늘은 옛일이라 했다
피고름 잡히는 해 저녁 입술을 깨물고 서 있는 그림자 말없이 흔들린다 억새밭을 어린 새처럼 지난다 팔목 마디마다 빗살무늬가 새겨지고 아마 그 즈음 사랑도 예리한 핏자국이 깊어갔을 것이다 바람이 흘러가는 길은 멀고 어린 사랑은 억새밭을 떠돈다 가려운 풀독이 중심을 향해 달려든다 달아날수록 빛의 살딱지가 날을 세우고 그물처럼 흠집만 늘어간다
귀퉁이가 무너진 흙더미에 앉아 선사시대의 사랑을 더듬는다 그 억새밭, 뿌리를 드러낸 후 내 사랑은 짓이 났다 했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1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배옥주 시인 / 꽃의 방술(方術) (0) | 2020.08.22 |
|---|---|
| 구석본 시인 / 마네킹의 눈물 (0) | 2020.08.22 |
| 정시마 시인 / 고양이 소크라테스 (0) | 2020.08.22 |
| 정호승 시인 / 리기다 소나무 외 4편 (0) | 2020.08.22 |
| 최영미 시인 / 미치도록 그리웠던 사랑 외 5편 (0) | 202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