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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석본 시인 / 마네킹의 눈물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2.

구석본 시인 / 마네킹의 눈물

 

 

얼굴을 뭉개버렸다 눈을 지우고 코를 지우고

입조차 깨끗이 뭉개버린 다음

영혼을 비우고서야

매끌매끌하고 반짝거리는 한 덩이의 물체가 되었다.

 

그리하여,

당신의 이목구비(耳目口鼻)와 관계한다.

당신의 눈에서 절제된 눈물을,

붉게 채색된 입술을 복제하고

당신의 영혼까지 은밀하게 서서히 석고로 굳히면

 

뜻밖에도 당신,

나 아닌

당신의 원형이 떠오른다.

 

매끌매끌하고 반짝거리는 한 무리의 당신,

 

한 무리의 당신은 적절하게 그늘을 드리우는 조명 아래 수의(壽衣) 같은 옷을

나 대신 입고 복제된 수많은 당신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혹은 사로잡힌다.

 

아름다운 것은 눈물이 없어요.

눈에는 눈물 대신 외로움이 보석처럼 반짝이지요.

 

조명이 꺼지면

물품관리실 구석의 어둠 속에서

더 깊은 어둠이 되어

아름다운 당신을 대신하여 외로움의 눈물을 흘린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8년 여름호 발표

 

 


 

구석본 시인

경북 칠곡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5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지상의 그리운 섬』, 『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 『쓸쓸함에 관해서』,『추억론』 등이 있음. 1985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