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유희봉 시인 / 선운사 동백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23.

유희봉 시인 / 선운사 동백나무

 

 

  선운사 동백나무는 학교통근버스다

  창문에 비추는 풍경은 바람에

  흔들리는 선운사 대웅전 풍경처럼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동박새

  배는 흰색 몸은 연두색 눈 주변 흰 테두리

  숨죽여 아내의 안경을 생각나게 한다

 

  파란 빨간색 없는 녹슬지도 않는 흰 안경

  하늘 맑은 고향 뒷산에 올라

  빨간 안경은 파란 하늘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안경 속의 붉은 저녁놀은 파랗소

 

  동백꽃 가슴에 품은 꽃술이 첫사랑 아내처럼 가볍게 떨고 있다

  부끄러운 얼굴로 한마디 말없는 그대 속으로만 타 오르던 붉던 얼굴

  나는 난파된 조타수처럼 애원한다 그날의 고백 후 생일날도 기억 못해

  허무의 웃음을 보내던 아내는 안경을 써야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통근버스처럼 앞 만 보고 달려온 것이 부끄러운 죄인이 되는가보오

  통금이 지나 술이 집으로 안내해도 하나 잘못 없다고 나 기쁘니

  따라 웃어주라 말했을 때 서글픈 미소를 짓던 그 밤들이 잠을 앗아가

  그리 눈이 나빠졌소?

 

  산언덕을 넘어 눈발은 치고 나리는데

  얼어붙은 땅속 실개천처럼 숨죽이며

  내 삶이 올빼미 생활이라는

  당신의 그 말이 그리 섭섭했었는데

  눈이 아파 눈물 많이 흘렀는가 보오

  내 마음 읽는 안경이 두렴기도 하지만

  색갈이 없어 무척이나 다행이오

  그 안경으로 보는 내 모습이 본래 나이니

  무어라고 한마디 말을 건네주오

 

  학교 통근버스에서 캠퍼스에 내리자

  진홍빛 슬픔 토해낸 동백꽃 내 열정

  진정 날 못 잊어 찾아온 당신은

  한 마리 동박새 황갈색 옆구리를 날렵하게

  퍼덕이는 녹색 등줄기 깃털

  입으로 공중에 열매를 던져 받는 묘기

  고운 몸매를 자랑하는 동박새

 

  꽃나무에 꽃가루를 옮기고서 빨갛게 피우던

  절정의 꽃 위로 비밀스런 눈빛이 선한 지난 날

  동백나무 숲 동박새는 보이지 않지만

  날 부르는 그대 있어 꽃을 필수 있는

  조매화처럼 삶을 경이롭게 간직하는 사람은

  고통도 기쁨 못지않게 경이롭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1월호 발표

 

 


 

유희봉(庾喜鳳) 시인

1948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 1993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호서대학에서 문화산업으로 경영학 박사학위 받음. 저서로는 시집으로 『여명의 내일』, 『녹슨 안경을 닦으며』, 『작은 초가집 주인이 되고 싶어』, 『유황불』, 『꽃처럼 나무처럼 살며 사랑하며』  등과 산문집 『행복한 샘물』, 시 창작집 『시를 써야 미래가 산다』가 있음. 국무총리상, 대총령표창, 녹조근정훈장, 예술총연합회상, 국제교류문학상 수상. 현재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산업안전보건교육원 겸임교수, 수원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