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은 시인 / 다시 떠도는 뽐므델리
장어골목이 장어꼬리까지 이어진다 꼼장어 머리가 박힌 못의 한 줄 구도가 단순하다
칼을 쥔 손과 공기가 뒤섞인다 붉은 피가 죽을힘을 다해 꼼지락거린다 피보다 진한 물도 있다
나를 껴안고 짓찧은 사람에게서 빠져나오려 했을 뿐 죽을힘으로 살아내거나 사랑한 적 없는 어둡고 깊은 내 목구멍을 찾는 꼼장어의 주둥이
무거운 소가죽보다 질기다는 꼼장어 껍질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가방 가볍고 부드러운 뽐므델리 플라스틱 인형처럼 지나가는 언니의 팔목에 감겨있는 꼼장어들 언니들을 보며 변신을 꿈꾸었을 아이들이 없다 숨이 막혀! 바다는 돌고 물밑에서부터 공기를 가르는 꼼장어들
탁자에 앉은 사람들이 불통과 고집뿐인 여자를 씹는다 즐겁지 않는 명절과 생일날을 씹고 허니버터칩을 씹는다 늙은 갈매기와 회귀성 파도를 씹는다
토막 난 양파 사이에서 꼼장어가 꼬리를 치켜든다 죽을힘이 서서히 고정된다 내 입안에서 나의 죽을힘이 씹히는 소리 눈이 붉고 뜨겁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2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최영미 시인 / 옛날의 불꽃 외 4편 (0) | 2020.08.24 |
|---|---|
| 김남조 시인 / 은혜 외 4편 (0) | 2020.08.24 |
| 유희봉 시인 / 선운사 동백나무 (0) | 2020.08.23 |
| 김지헌 시인 / 사위질빵 (0) | 2020.08.23 |
| 한소운 시인 / 이사 (0) | 2020.08.23 |